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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이 도심을 달리던 중 선로 앞에 버스 한 대가 멈춰 섰다. 트램은 그대로 속도를 줄여 안전거리를 확보한 뒤 정차했다. 잠시 뒤 버스가 자리를 비키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전대를 잡은 기관사는 없었다. 주변 상황을 살핀 인공지능(AI)이 스스로 내린 판단이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철도박람회 '이노트란스(InnoTrans) 2026' 현대로템 전시장. 부스 한편에 마련된 작은 도시 모형에서는 미래 철도의 모습이 쉴 새 없이 펼쳐졌다. 건물과 도로, 역사, 차량기지가 빼곡히 들어선 디오라마 위로 트램이 움직였고, 벽면 대형 화면에는 차량 위치와 운행 상황이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AI Autonomous Tram System(인공지능 자율주행 트램 시스템)'이라는 문구가 관람객을 맞았다.
디오라마 앞에서는 관람객들이 걸음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과 모형을 촬영했다. 현대로템이 이번 이노트란스에서 전면에 내세운 것은 수소전기트램에 AI를 결합한 완전자율주행 철도다.
미래 트램의 하루는 운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AI와 함께 시작된다. AI가 전날 운행 기록과 차량 상태, 수소연료전지 충전 상태를 확인한다. 디지털 공간에 현실을 그대로 옮긴 '디지털 트윈'에서는 예상 승객과 도심 교통 상황까지 반영해 수천 가지 운행 상황을 미리 계산한다. 이상이 발견된 차량은 운행에서 제외하고, 최적의 배차 간격과 역간 이동 시간을 산출한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이노트란스 2026 현대로템 전시관에서 관계자가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을 설명하고 있다. 화면에는 카메라 영상과 라이다(LiDAR)가 인식한 주변 정보가 함께 표시돼 있다. 서믿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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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운행에 들어가면 라이다(LiDAR)와 카메라가 기관사의 눈을 대신한다. 현대로템 부스 벽면에 설치된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화면에는 카메라가 바라본 선로와 라이다가 인식한 주변 사물이 동시에 나타났다. AI는 단순히 선로 앞에 물체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과 구조물을 구분하고, 해당 물체가 선로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까지 판단한다.
트램은 자동차와 달리 장애물을 발견했다고 옆으로 방향을 틀 수 없다. 자동차와 보행자, 자전거가 뒤섞이고 교차로와 횡단보도까지 지나는 만큼 위험을 먼저 발견해 제때 멈추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현대로템이 지하철보다 트램에서 더 높은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이노트란스 2026 현대로템 전시관에 수소전기트램 모형이 전시돼 있다. 현대로템은 수소전기트램에 AI 기반 자율주행 기술을 접목해 2031년 완전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믿음 기자
AI의 역할은 운전에만 머물지 않았다. 디오라마 속 차량에서 승객 한 명이 쓰러지자 차량 내부 AI 폐쇄회로(CC)TV가 이상 상황을 감지했다. 곧바로 관제 화면에 경고가 나타났고 구급차가 출동했다. 차량이 도착할 역에 구급차를 미리 보내 환자 이송 시간을 줄이는 상황을 구현한 것이다.
전시관 벽면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자 'CBM(Condition Based Maintenance·상태기반유지보수)', 'Digital Factory(디지털 팩토리)', 'MMIS+(정비관리정보시스템)'라는 이름의 화면이 차례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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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철도를 '운전'하는 것을 넘어 '만들고 고치는' 과정까지 맡는다는 구상이다.
CBM은 카메라와 센서에서 확보한 차량 데이터를 분석해 부품의 마모 정도와 정비 시.을 예측한다. 현재 KTX-청룡에도 차량 주요 부품에 설치된 센서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CBM 시스템이 적용돼 있다. 향후 운행 과정에서 쌓이는 데이터를 AI에 학습시키면 고장이 발생하기 전에 이상 가능성을 예측하는 방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게 현대로템의 설명이다.
바로 옆 디지털 팩토리 화면에는 '제조 시뮬레이션'과 '인체공학 분석', '공정 검증', '공장 흐름 시뮬레이션' 등이 단계별로 표시돼 있었다. 실제 차량을 만들기 전에 가상 공간에서 공장을 먼저 돌려보겠다는 것이다. 설계와 실제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차를 줄이고 작업자의 동선이나 생산 공정까지 사전에 검증할 수 있다.
정비 과정에도 AI가 들어온다. MMIS+는 차량에 문제가 생겼을 때 작업자가 태블릿에 음성으로 상황을 입력하면 AI가 과거 정비 기록을 분석해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기존 시스템이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데 초。을 맞췄다면 이제는 AI가 축적된 데이터를 토대로 판단까지 내리는 단계로 확장되는 셈이다.
현대로템이 그리는 종착.은 기관사 없이 도심을 달리는 완전자율 수소전기트램이다. 현대로템은 2023년 수소전기트램 실증사업을 수행하며 자체 ADAS 개발에 본격 착수했고 올해 철도차량용 ADAS 개발을 마쳤다. 현재 ADAS와 관제 시스템을 연동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2031년 완전자율트램 기술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쟁사들도 트램 자동화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알스톰은 카메라를 이용해 보행자와 장애물을 감지하는 시스템을 개발했고, 지멘스는 차량기지 내에서 트램이 기관사 없이 세척·정비 구역으로 이동하는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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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코다 역시 복합 센서를 활용한 장애물 감지와 비상제동 기술을 개발했다. 현대로템은 여기에 수소에너지를 결합해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수소전기트램은 수소연료전지와 배터리를 함께 사용해 1회 충전으로 150㎞ 이상 달릴 수 있고 별도 가선 없이 운행할 수 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이노트란스 2026 현대로템 전시관에서 관람객이 가상현실(VR) 장비를 활용한 가상 엔지니어링 기술을 체험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가상 공간에서 차량 설계와 작업 환경 등을 사전에 검증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서믿음 기자
현장에서 만난 관람객들의 시선은 기대와 신중론이 교차했다. 캐나다에서 온 철도 엔지니어 파리보르즈 랑게루디(Fariborz Langeroudi)는 AI를 활용한 철도 안전 기술에 대해 "기술은 미래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며 "기술을 신뢰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현대로템과 기술 이전 관련 업무를 한 경험이 있다는 그는 "기술을 개발하고 고객과 소통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철도업계 관계자 줄리오 삼부가로(Giulio Sambugaro)는 AI 기반 자율주행 트램의 발전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현재는 안전성에 다소 신중할 수 있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까운 미래에는 。。 더 안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디오라마 속 트램은 다시 차량기지로 돌아왔다. 운행을 마쳤지만 AI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카메라가 차체와 하부를 살피고 AI가 이상 여부를 분석해 다음 정비 계획을 세웠다. 운행 전 .검부터 운전, 응급상황 대응, 정비까지. 이날 현대로템 부스가 보여준 미래 철도에서 사람은 운전대를 내려놓았지만, 그 자리를 대신한 AI의 판단은 오히려 더 많은 곳에 들어가고 있었다.
. 캐나다에서 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