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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는 자신의 집에서 건축가 '스티브'에게 .심을 대접하고 담소를 나눈다. 손님을 반기는 성품인지 대화를 즐기는 표정이 환하다. 상대는 루스를 근사한 곳으로 모시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나는 나들이처럼 함께 차를 타고 도착한 장소는 노인 요양 시설이다. 이제 원치 않는 새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부모를 요양시설에 보낸다는 것
▲ <친숙한 손길> 포스터
ⓒ 필름다빈
1936년 출생, 。. 기억력이 감퇴하는 과정을 겪고 있는 주인공이 혼자 지내는 것을 염려한 장성한 아들은 어머니를 자신이 감당 가능한 선에서 가장 우수한 요양원에 보낸다. 치매 증상을 앓기 시작한 고령의 노인을 위한 합리적인 조치다.
이젠 왜 직접 모시고 돌보지 않느냐는 도덕적 비판도 힘을 잃은 지 오래, 영화 속 실버타운은 충분히 괜찮은 시설로 보인다. 처음 로비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루스마저 여길 호텔로 착각할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곳이 요양원이란 걸 깨닫자마자 주인공의 표정은 싸늘하게 변한다. 물론 모든 과정은 합법적으로 이뤄졌다. 자신이 여기에서 죽는 날까지 여생을 보낼 것이란 걸 직감한 루스는 상황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그녀가 결정을 거스를 수 없음도 잘 안다. 그렇다면 남은 건 그저 침묵하는 것뿐. 이제 자신의 삶이 이곳에서 고독하게 마침표를 찍는다는 현실 앞에 누가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루스의 태도 앞에 담당 간병인 '바네사'도 곤란하다. 종종 미디어에서 접하는 방치된 노인과 그들을 학대하는 복지시설 이야기는 고급 시설이라는 걸 누가 봐도 확인할 수 있는 이 실버타운에선 해당하지 않는다.
자연히 고객을 세심히 잘 다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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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여전히 혼자 잘 지낼 수 있다고 믿는 자부심 강한 고객 앞에서 쩔쩔맬 수밖에 없다. 루스가 고용인을 함부로 대하진 않더라도 고집을 계속 부린다면 바네사에겐 큰 부담이다.
아들인 스티브 입장에선 치매를 앓는 노모를 그냥 집에 홀로 둘 순 없는 게 당연하다. 그가 선택한 실버타운의 모습을 봐도 자식이 효심이 부족해 원하지 않는 어머니를 강제로 시설에 떠넘겼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그로선 합리적 선택인 동시에 최선은 아니라도 노력한 것임을 부정할 순 없다. 루스에게 감정을 이입해 아들의 판단을 비난할 순 있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나라면 저것보다 잘 해낼까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고개를 저을 게 뻔하다.
요양원에서 인생 2막은 가능할까
▲ <친숙한 손길> 스틸
ⓒ 필름다빈
그렇게 주인공의 운명은 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노인 문제를 다룬 영화는 대부분 여기에서 끝난다. 시설 수용자가 받는 비인권적 처사를 고발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이제 그들의 삶은 더 궁금할 게 없는 것으로 취급되는 탓이다.
아무도 관심을 가질 이유 없는, 다만 생물학적 수명이 다할 때까지 머무는 곳에서의 시간일 뿐이다. 이는 그들의 운명에 동정적이건 아니건 대개 당연시되는 결말이다. 대체 그곳에서의 삶에 무엇을 논하고 상상할 수 있을까?
물론 요양시설에서 황혼에 접어든 노인의 시간이란 한계는 명확하다. 무엇보다 아무리 보살핌을 받는다고 해도 결국엔 통제된 삶이란 본질을 벗어날 순 없다. 자신의 요리 실력을 자부하던 루스가 직접 음식을 만들 수 없고, 메뉴에 대한 선택권도 없는 식사에 만족하긴 힘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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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증세를 인정하지 못하는 그녀로선 이곳에서의 삶은 수용소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아들의 의도와 달리 엄마는 불행에 빠진다. 저러다 큰 일이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될 지경.
역설적으로 루스의 적응은 그녀 자신이 기억을 잃어가면서 이뤄지듯 보인다. 종종 자신의 상황을 까먹은 주인공은 실버타운에 수용되기 전 삶을 고스란히 재연한다. 요리책을 집필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그녀는 시설 주방에 들어와 위생 상태를 갖춘 다음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어안이 벙벙하던 주방 직원들은 곧 담당 간병인을 호출하지만, 주방 일을 도울 뿐, 오히려 안정된 상태를 보이는 루스를 잠시 관망하기로 한다. 규정보단 융통성을 우선한 것.
친구도 사귄다. 루스가 보기에 시설에 수용된 노인 다수는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양한 상태가 공존함을 깨닫게 된다. 기억력 감퇴를 늦추기 위한 독서 모임에서 활동하고, 요양원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개최하는 황혼 미팅이나 생일 축하파티도 참가한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또래 노인 '펄'은 루스에게 시설의 다양한 면모를 알려준다. 몇 층은 기억 상실, 몇 층은 거동 불편 위주이기에 미팅 상대는 어디가 좋다는 깨알 같은 팁이다.
내려놓고 인정하는 순간 보이는 것들
▲ <친숙한 손길> 스틸
ⓒ 필름다빈
그렇게 꾸준히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루스는 요양원에서의 삶을 이어간다. 종종 착각에 빠져 주방장으로 변신하기도, 자신을 돌보는 직원들과 친분을 쌓으며 소일거리 삼기도 하면서 어쨌든 체념에만 빠질 순 없다고 생각한다.
아직 살날이 남아 있고 무기력하게 죽음에 지긴 싫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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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네사는 물론, 건강상태를 파악하는 관리자 '브라이언' 역시 그런 루스의 태도를 주의 깊게 바라본다. 새로운 친구이자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엮이는 관계다.
이중적 관계는 주인공이 겪는 일희일비와 고스란히 겹친다. 자존심 강한 루스는 뭐든 충분히 설명을 듣고 스스로 동의할 수 있어야 수용한다. 죽기만 기다리는 무력한 노인이 아니라는 강렬한 의지다. (다른 영화라면 건성으로 대하기 일쑤인) 직원들의 태도는 다행히 <친숙한 손길>에선 스테레오 타입을 벗어난다. 가련한 노인 주인공을 괴롭히는 캐릭터로 소모되던 이들을 세심하게 조명하는 성취가 발견된다. 이곳 역시 사람 사는 세계란 걸 입증하는 장치다.
루스는 여전히 외로움과 상실감을 떨칠 수 없지만, 삶을 유지하려 애쓴다. 자신을 관리하고 품위를 유지하려 정성을 기울인다. 동료 노인들처럼 아무렇게나 대충 차려입지 않고 몸단장에 신경 쓰는 티가 역력하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치장이라기보단 자신을 관리하고 타인과의 관계에 소홀하지 않기 위함이다. 사회성을 유지하되, 자신이 독립된 주체로서 여전히 존재함을 천명하는 자세가 뚜렷하다. 그런 고고한 태도가 그녀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도록 만든다.
바네사는 루스에게서 일찍 헤어진 어머니를 떠올리며 돌보는 대상에서 친구로 관계의 변화를 경험한다. 브라이언은 루스의 명민함과 변함없는 지성을 확인하고 천편일률적인 관리대상을 넘어 우정을 나눈다.
그저 불쌍한 노인이 아니라 친구로 관계를 쌓다 보면 기대감과 더불어 상처도 공유하게 된다.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제약에 좌절한 루스가 벌이는 일탈에 분개하다 아슬아슬한 상황이 벌어질 위기도 맞는다. 위험천만하긴 해도 살다 보면 종종 겪는 일이다.
고령화 이후의 사회, 카메라로 포착하는 이면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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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숙한 손길> 스틸
ⓒ 필름다빈
<친숙한 손길>은 노인 문제를 다룬 작업이 종종 놓치던 공백을 포착하고 끈질기게 파고든다. 한 개인의 요양원에서의 시간을 다큐멘터리 보듯 관찰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보고 있으면 현실 문제와 저절로 연결해 수많은 감상으로 이어진다. 처음엔 무심코 딱한 시선으로 루스의 운명을 바라보다 조금씩 낯설고 흥미로운 감정에 사로잡힌 채 다음 행보를 기다릴 테다.
물론 후반에 겪는 좌절처럼 육신의 쇠락은 근본적인 한계다. 아무리 애써도 기억은 온전히 회복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끝내 강인하던 정신력도 무너질 위기에 빠진다. 초고령화 시대로 진입하는 한국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남의 일이 아니다. 누구나 겪게 될 '다가올 미래' 앞에서, 주인공이 먹먹한 눈빛으로 요양원으로 돌아올 때 심정을 어떤 미사여구로 위로할 수 있을까?
스티브에 의해 밝혀지는 루스의 인생은 평범하지 않다. 젊은 시절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했고 자신의 이름으로 저서도 출판할 만큼 충만한 삶을 살았다. 가족에게 헌신했고 자식을 위한 요리비법 노트를 만들 만큼 사랑으로 돌봄을 실천한 삶이다.
그랬던 그녀가 더는 사회에 봉사할 방도를 찾지 못한 채 돌봄의 대상으로 전락한 건 차라리 죽기만 못한 지경이다. 물론 그녀의 요양원 동료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존재였을 테다. 우리가 잊어버린 드라마다.
영화 속 주인공의 여생은 빈곤한 또래 노인과 비교하면 물질적으로 한참 나은 조건임은 분명하다. 학비를 벌기 위해 간병인으로 일하는 바네사로선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자신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비용이라 요양원 시설에 대해 평한다. 그러나 작품의 초。은 계급 비교보다는 중산층 노인세대의 소외감에 집중된다.
현재 고령화 사회 진입에 따른 노인 대책은 대개 빈곤 문제에 초.이 맞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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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당연한 과정이다. 노동력을 상실한 고령층에게 생존을 위한 안전망 마련은 필수과제다. 하지만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듯, 이들이 단지 '잉여', 즉 짐짝 취급을 받으며 자녀 세대에게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도록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로 대두된다. 이는 '세대 전쟁'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세대 갈등이 격심해진 상황에서 사회 통합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영화는 그런 。에서 제도와 조건에 그치지 않고 노인층이 조망하는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해준다. 이들이 가진 여전한 생을 향한 의지와 욕망이 은근한 접근법으로 불쑥 돌출한다. 무기력하게 죽음만 기다리리라 단정하던 그들 역시 인생의 2막, 3막을 꿈꾸는 존재임이 증명되면 필연적으로 해결을 위한 고민도 시작해야 한다. 정답을 도출하려면 깜깜하긴 해도 일단 문제를 제대로 포착하는 게 중요하다. 그들의 갈망을 사회는 어떻게 받아안아야 할까?
본 작품의 탁월함은 또 있다. 비용 문제로만 따지던 노인 관련 시설 종사자의 근무 환경에 관한 세밀한 조명이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제작진의 헌사, "노인과 노인을 돌보는 분들에게 바칩니다."란 문구는 <친숙한 손길>이 갖는 사려 깊은 태도, 어쩌면 우리가 비용으로만 환산하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를 주문하는 무엇보다 강렬한 메시지로 기능한다. 차분하게 관조하는 이 영화의 시선은 노인의 지혜처럼 멀리, 깊숙하게 세상의 단면을 다룬다.
▲ <친숙한 손길> 스틸
ⓒ 필름다빈
<작품정보>
친숙한 손길
Familiar Touch
2024 미국 드라마
2026.09.23. 개봉 91분 12세 관람가
감독 사라 프리들랜드
출연 캐슬린 찰팬트, 캐롤린 미셸 스미스, 앤디 매퀸
수입/배급 필름다빈
2024 81회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부문 감독상/여우주연상/미래의 사자상(데뷔작품상)
파고든다. 한 개인
